협회소식

논산시, 치매관리사업 민관협력 우수사례 선발대회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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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뉴시스]곽상훈 기자 = 충남도가 주최하고 충남도 광역 치매센터가 주관한 ‘치매관리사업 민관협력 우수사례 선발대회’에서 논산시 치매안심센터가 영예의 대상을 수상했다.

시 치매안심센터는 사단법인 한국연극치료협회와 연계해 실시한 ‘랄랄라 청춘극장-날마다 풍년 얼쑤’라는 사례를 출품했다.

센터와 협회는 지난 6월부터 8월까지 3개월 동안 65세 이상의 그룹별 대상자를 선정해 연극치료 프로그램을 제공해왔다.

대상자들은 즉흥극, 인형극, 회상연극 등 다양한 장르의 연극을 감상하고 발표하는 경험을 가지며 인지기능 향상에 힘썼다.

연극을 매개로 대상자의 정신적·신체적 에너지를 활성화하고, 예술작품 감상 기회를 넓게 펼쳐 문화와 보건, 복지 서비스를 효과적으로 엮어 냈다는 점이 높은 평가로 이어졌다.

아울러 충남개인택시 운송사업조합 논산시지부와의 유대를 토대로 먼 거리에 거주하는 치매 프로그램 대상자들에게 교통 서비스를 제공한 부분 역시 수상의 배경이 됐다.

백성현 논산시장은 “유관기관 간 긴밀한 협력으로 시민들에게 치매예방부터 관리까지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한 노력들이 수상의 결실로 이어졌다”며 “치매환자와 가족들이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는 도시 환경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논산시 치매안심센터는 출품사례뿐만 아니라 치매환자 인지재활 ‘쉼터’, 치매 고위험군 대상 인지 강화, 치매환자 가족 자조 모임 및 힐링, 치매안심마을 예방 등 다양한 정신건강 증진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kshoon0663@newsis.com


단추를 잘못 채웠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

극단 치유의 치유적 공연 <그 여자 그 남자 그리고>

 


이선형(연극평론가)

 


잘못 채운 단추를 제대로 끼우려면 일단 풀어야 한다. 풀지 않는 한 단추를 똑바로 끼울 수 없다. 단추를 잘못 끼운 것은 과거의 일이다. 따라서 과거의 잘못된 단추를 풀어야 현재를 제대로 살 수 있다. 흘러가는 시간에서 현재란 없다. 미래도 없다. 오로지 과거가 축적되어 가는 과정만 있을 뿐이다. 그 축적된 과거의 기억들이 지금의 나를 있게 한다. 그런데 과거가 잘못 끼워진 단추라고 굳게 믿고 있다면, 언젠가 한 번은 그 단추를 다시 풀어야 한다. 그 언제가 한 번... 이 직면의 순간을 누군가는 평생 영영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비극이다. 복수, 피, 죽음이 난무하고 고통으로 점철된 비극이 고전적이라면, 단추를 잘못 끼웠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언젠가는 다시 풀어서 제대로 끼워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음에도, 결국 아무 것도 하지 못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비극이다. 문제는 단추를 다시 푸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단추를 풀면 자신의 속내가 고스란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타인의 시선에 자신을 완전히 개방하는 것은 트라우마에게 시달리는 사람에게 지옥 같은 일이다. 그래서 심리치료나 예술치료 등 다양한 치료 기술을 동원하여 좀 더 쉽게 단추를 풀 수 있도록 한다. 사실 모든 마음 치료는 단추가 잘못 끼워졌다는 것을 스스로 알아차리고 이를 풀어내어 제대로 끼우도록 돕는 것이다.


예술은 마음 치료에 결정적이다. 니체에 의하면 예술은 삶에 대한 최고의 자극제며 삶의 건강을 회복시키는 치료제 역할을 한다. 예술은 자체로 진지하고 깊은 성찰의 세계를 제시하고, 삶을 반성하게 하며, 살면서 생겨나는 어려움을 이해하고 극복하도록 한다. 이러한 예술을 본격적으로 치료에 반영한 것이 예술치료다. 그리고 종합예술인 연극을 치료에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이 연극치료다. 극단 치유는 창단 공연으로 <그 여자 그 남자 그리고>(박미리 연출, 알과핵 소극장, 2022.12.14.~18)를 선보였다. 이 연극이 흥미로운 것은 극단 치유라는 이름을 앞세우고 본격적인 연극의 치유성을 강조했다는 점이다. 다양한 연극치료 모델 가운데 치료에 초점을 맞춘 공연을 치료적 공연 혹은 치유적 공연이라 칭한다. 치유적 공연은 일반 연극과 다를 바 없는 형식을 취하거나 처음부터 치료를 목적으로 관객 또는 참여자를 연기자로 참여시키기도 한다. 이번 극단 치유의 공연은 전자에 해당한다. 그럼 다음의 질문이 필요하다. 일반 연극과 다를 바 없다면 어떤 점에서 치유적 공연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제목은 간판이다. 가게 사장이나 작가는 가게나 작품 내용을 가장 멋지게 표현할 수 있는 제목 선택에 고심한다. 제목은 우리 각자의 이름이기도 하다. 태어날 땐 없었지만 붙여진 이름은 어느덧 우리의 분신이 된다. 그런데 이 치유연극의 제목은 <그 여자 그 남자 그리고>이다. 남성 중심의 시각에서는 왜 여자가 먼저냐고 따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삶의 이야기지 정치·사회적 이야기가 아니므로, 누가 앞서는가는 별 의미가 없다. 여자와 남자 앞에 붙은 ‘그’는 문맥상 의미가 결정되는 조응소(anaphora)로서 이곳에 없는 사람을 지칭하는 관형사다. ‘그’로 인해 그들은 과거의 인물이거나 상상 속의 존재가 된다. ‘그리고’는 점점점 처럼 맺음이 없음을 뜻한다. 그리고 어쩌라는 것인가? 그리고 ...은 관객의 몫이다. 그 여자와 그 남자가 자신의 생각을 극화하고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리고 여러분은 어떠한가를 묻고 있는 것이다. 인간으로서, 여자 혹은 남자로서 여러분은 어떠한 삶을 살아왔는가? 그리고 현재의 삶은 어떠한가? 제목은 거리를 조절하면서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다.


연출가와 연기자는 연극치료와 깊은 관련이 있다. 박미리 연출은 연극치료 전문수련감독이고 남미정 배우는 연극치료사이며 이승헌 배우는 연극치료 프로젝트에 예술가로 참가한 경력이 있다. 연극치료 관련자 셋이 모인 워크숍의 풍경은 짐작이 간다. 각자의 과거를 펼쳐 놓고 잘못 채운 단추는 없는지, 있다면 현재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풀어냈을 것이다. 물론, 행복한 기억도 일정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일종의 집단 창작인 셈인데 이야기는 공연이 진행되는 가운데도 계속 변했을 것이다. 이야기는 있으나 작가가 없는 셈이랄까. 생성과 과정 중에 있는 이야기는 언제든지 변할 수 있는 여지로 충만하다. 어느 날 공연이 끝난 후 연출가가 “오늘도 새로워진 부분이 있어요!”라고 말한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막이 열리면 음향과 조명이 적절하게 혼용된 산듯한 무대가 펼쳐져 일반 연극과 다를 바 없다. 배경 막처럼 무대 안쪽에 세워진 장막은 스크린이 되어 영상이 투사된다. 흔히 치유적 공연하면 객석과 무대의 경계를 없애고 연기자와 관객이 소통하는 방식을 떠올릴 수 있다. 하지만 이 공연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물론, 첫 장면에서 그 여자가 객석에서 등장한다든가 공연이 끝날 무렵 객석의 조명을 밝힌 다음, 마치 관객과 대화하듯 극을 엮어가는 방식이 있긴 하나 그것이 특별한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어떤 점에서 치유적 공연인가? 영상과 조화를 이룬 인물은 서로 상관없이 독립으로 자기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무관하게 지나치거나 상대의 이야기에 도움이 되는 역할을 할 뿐, 상대에게 직접 시선을 던지지 않는다. 연극은 이런 식으로 흘러간다. 11장으로 이어진 장은 옴니버스식으로 따로 혹은 함께 단편적인 조각들로 엮어진다. 그 여자 또는 그 남자는 독백처럼 자신을 이야기할 뿐이다. 그 여자는 크리스마스이브에 있었던 한 사건을 말한다. 불행했지만 행복했던, 그래서 다음에는 아무런 기억이 나지 않는 어린 시절 무대의 아름다운 추억을 떠올린다. 남자는 영화 <길>을 보았던 기억과 계절 그리고 하늘과 교감하던 옥탑방의 추억을 되살린다. 고독하지만 아름다운 장면이 연출된다. 이렇듯 무대는 두 인물의 기억 또는 추억으로 진행된다. 중간쯤 크루즈 장면에 이르러 비로소 그들은 직원으로 만난다. 연기자 중 한 사람이 실제로 경험한 크루즈 사건은 그들에게 상처만 남기고 연기처럼 사라진다. 사실 상처는 사라진 게 아니다. 한참이나 지난 후 우연히 마주쳤을 때 각자는 자신을 따라다닌 지긋지긋한 악몽을 말한다. 여자는 자기를 잡아먹는 호랑이 꿈을, 남자는 상처를 주는 관객의 반응을 말한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과거의 갈등도 풀어진다. 여자는 마음이 편안해졌다고 말하고 남자는 크루즈 사건에 대해 진심 어린 사과를 한다. 마침내 잘못 채운 단추는 풀어진다. 남자는 이렇게 말한다. “단추를 잘못 채우면, 어쩌다 잘못 채울 수 있잖아. 똑바로 채우려면 다시 다 풀어야 하잖아. 내 인생이 그래. 그때 그 하나만 바로 잡았으면 하는 후회가 있어. 반드시 있어. 근데 그 한순간뿐이었을까? 진짜 그때 그 순간만 아니었으면 내 인생이 달라졌을까?” 그의 인생이 달라졌을까? 그것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확실한 건 단추를 똑바로 채우면 적어도 마음은 훨씬 평화로웠을 것이다. 이렇게 그들은 과거를 보여주고 자신을 드러내며 스스로 치유하는 여정을 보여준다.


 극단 치유는 이제 첫걸음을 떼었다. 한발 한발 나가면서 더욱 많은 사람과 상처를 공유하고 치유할 힘을 축적할 것이다. 기왕에 치유라는 키워드를 앞세운 만큼, 공연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문턱을 더욱 낮추어 삶과 예술을 오가는 진정한 치유적 연극이 되기를 기대한다.